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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王朝前半期의 山水畵>

安輝濬
서울大學校敎授

4. 조선중기의 산수화
안견파화풍의 계승과 절파화풍의 유행

조선왕조 중기(약 1550∼약 1700)에는 왜난(倭亂)과 호난(胡亂) 같은 전국을 초토화한 크나큰 난리들이 일어났고 또 격렬한 당파싸움이 전개되는 등 정치적으로는 매우 불안했음에도 불구하고 회화는 여전히 활발하게 제작되었으며 나름대로 특색있는 화풍들이 생성되었다. 이러한 조선중기 회화의 특색은 산수(山水), 영모(翎毛), 화조(花鳥), 묵죽(墨竹), 묵매(墨梅), 묵포도(墨葡萄) 등 여 러 분야에서 나타났다.

특히 산수화에서는 한편으로는 안견파화풍을 비롯한 조선초기의 화풍들을 계승하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절파계의 화풍을 즐겨 그리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되었다. 또한 남종문인화가 전래되어 소극적이나마 수용되기 시작하였다.

이 시대에 계승된 조선 초기의 화풍들 중에서도 안견파화풍은 특히 끈덕지게 지속되어 이정근, 이흥효, 이징(李澄), 김명국 등의 작품에는 물론 그밖의 많은 작품들에도 그 영향이 나타나 있다. 절파화풍은 조선중기에 김제, 이경윤(李慶胤) 등의 선비화가들에 의해 활발히 그려졌고, 뒤에는 김명국과 같은 화원에 의해 더욱 강한 화풍으로 변모되었다. 그러나 이 시대의 일부 화가들은 당 시에 유행하던 절파화풍의 그림을 그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안견파화풍의 전통을 계승하는 경향을 띠었다.

김제·이불해·함윤덕, 윤인걸

조선 중기의 산수화를 논할 때 제일 먼저 관심의 대상이 되는 사람은 김제(1524∼1593)이다. 그 는 주로 명종(明宗, 1546∼1566)과 선종(宣祖, 1567∼1607) 때에 활약했던 인물이며 그의 종손인 김식(金埴)과 김?(金?) 그리고 이흥효와 이경윤 등의 주요 화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는 안견 파의 화풍을 계승하면서 다른 일면으로는 절파화풍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결과적으로 조선중기 화단의 동향을 대변해 준다고 하겠다.

김제가 수용했던 절파화풍의 경향을 말해주는 대표적인 예로는 [동자견려도(童子牽驢圖)]<도 >를 들 수 있다. 근경에는 큰 소나무가 한 그루 솟아 있고 그 뒤에는 주봉(主峰)이 비스듬히 솟 아 있다. 그런데 이 주봉의 앞면은 대부벽준(大斧劈 )으로 대충 대담하게 처리되고 대부분은 흰 면으로 남겨져 있다. 또 그 주변은 진하고 묽은 먹으로 처리된 후 태점이 가해져 있다. 이 때문에 주봉은 강한 흑백의 대조감(對照感)을 유발한다. 이와같은 특색은 절파의 후기 양식과 유관한 것 이다.

주봉을 위시하여 산수가 꽤 웅장해 보이지만 사실상 촛점은 백호분(白糊粉)으로 하얗게 칠해진 옷을 입고 나귀의 고삐를 당기고 있는 동자에게 주어져 있다. 이처럼 이 [동자견로도]는 절파화 풍의 요소를 짙게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 그림에 보이는 김제의 화풍은 후에 이경윤, 김명국 등 으로 전통이 이어졌다.

김제는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안견파화풍의 전통을 계승하였던 것인데, 이러한 사실은 1584년에 그린 [한림제설도(寒林霽雪圖)]<도 >에 잘 드러나고 있다. 이 그림의 구도와 공간처리 등은 안견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사시팔경도]의 [초동]<도 >과 매우 관계가 깊다. 다만 김제의 그림이 옆으로 좀더 확산된 점이 큰 차이라 하겠다. 이처럼 김제는 절파화풍을 수용하여 그리면 서도 안견파화풍의 전통을 계승하였던 것이다. 김제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이불해는 절파화풍과 남송 원체화풍을 토대로 하였다. 그의 대 표작으로 알려진 [예장소요도]는 당시 화단의 한 동향을 짐작케 한다. 지팡이를 집고 소요하는 선비를 주제로 한 이 그림의 주산은 남송 원체화의 기법을 따라 부벽준(斧劈 ) 등으로 처리한 반면에 근경의 수지법 등에는 안견파 계통의 전통적인 기법이 엿보이고 있다. 즉 두가지의 상이 한 전통을 혼합하여 그린 작품이라 하겠다.

이불해의 다른 전칭작품들은 그가 절파화풍과 안견파화풍의 그림도 자주 그렸음을 말해준다. 함윤덕(咸允德)의 [기려도(騎驢圖)]가 보여주는 구도는 그밖에 그의 영향을 받았던 윤인걸(尹仁傑)의 [거송관폭도(踞松觀瀑圖)] 등에도 나타나고 있어서 16세기후반에 널리 유행되었던 것임을 시사해 준다. 이 그림들에는 인물이 주제이고 그 주변에 보이는 약간의 산수는 주인공을 위한 배 경이나 무대에 지나지 않는다. 이 점은 15세기중엽 강희안의 [고사관수도]<圖 >에서도 보았던 바이다.

이정근·이숭효·이흥효

이들과는 달리 이정근은 보다 전통적인 안견파화풍과 미법산수화풍을 따라 그렸다. 그의 [설경 산수도]와 [미법산수도]는 이 사실을 잘 입증해준다. [설경산수도]는 중심축에 무게가 집중되어 있는 안정감 있는 구도를 따르고 있으나 산과 바위와 나무들의 묘사에는 안견파의 전통이 뚜렷이 엿보인다. 그러나 효율적인 거리감의 표현이나 연두색의 설채(設彩)는 16세기적인 특색이라 하겠 다.

이와는 달리 그의 [미법산수도]는 명대의 미법산수를 토대로 하고 있어서 북송이나 원대의 미 법산수화풍의 영향을 받아 작품들과는 차이가 있다. 즉 점들이 횡장(橫長)하고 촘촘하면서도 너무 규칙적이고 변화가 적다. 두드러진 근농원담(近濃遠淡)의 묵법도 인상적이다. 그런데 멀리 대각선 을 이루며 사라지듯 표현된 강안(江岸)을 따라 거리감이 강하게 표현된 것은 16세기 후반의 특색 이 아닌가 생각된다.

16세기의 후반에 활약했던 화가들로서 또한 주목을 요하는 화원들은 李崇孝와 李興孝(1537∼ 1593)의 형제이다. 李上佐의 아들인 이들은 남송의 마원화풍과는 별 관계가 없었던 것으로 여겨진 다. 이숭효와 이흥효의 것으로 전해지는 작품들은 오히려 안견파화풍이나 절파화풍과 보다 관련 이 깊다. 이러한 특색은 이숭효의 아들 이정의 작품인 [산수도]에서도 엿보인다. 이흥효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전해지는 여섯폭의 [산수화첩]으로 미루어 보면 안견파의 화풍을 보다 적극적으로 계승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 화첩의 그림들은 안견파의 편파구도계 전통을 잇 고 있다. [추경도(秋景圖)]를 예로 보면 오른편 종반부에 무게가 주어져 있고 중거(中距)에 넓은 공간이 시사되어 있어 [사시팔경도]<도 > 등에 보이는 안견화풍의 영향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 나 산의 표면묘사에는 절파의 기법이 깃들어 있고 수평적인 거리감의 표현에는 조선 중기적인 특 색이 드러나 있음도 간과할 수 없다. 이처럼 이흥효는 절파화풍의 그림을 그리면서도 조선 초기 의 안견화풍에 강한 집착성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이경윤

조선중기의 산수화에서 김제에 이어 특히 주목되는 인물은 이경윤(1545∼?)이다. 그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그림은 여러폭 남아 있는데 대개 화풍이 절파풍이면서도 약간씩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또 이 작품들에는 이경윤 자신의 관서(款署)나 도인(圖印)이 결여되어 있어서 어느것이 그의 진필 인지 확인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이러한 작품들이 한결같이 절파화풍을 토대로 한 산수화나 산수 인물화들이어서 그가 절파화풍의 대가였음을 짐작케 한다.

이 작품들 중에서 가장 표준이 될 수 있는 것을 호림박물관(湖林博物館) 소장의 [산수인물첩 (山水人物帖)]〈도 〉이라 할 수 있다. 이경윤과 동시대인이며 대표적 문장가였던 간이당(簡易堂) 최립(崔笠)의 찬문이 적혀 있고, 또 [시주도(詩酒圖)]등 일부 작품들은 화풍과 화격의 측면에 도 수긍이 가기 때문이다. 특히 [시주도]는 안정된 구도, 활달한 필법, 유려한 선의 묘사, 세련된 묵법, 섬세한 표정 묘사 등 모든 면에서 빼어난 작품이라 하겠다. 이밖에 이경윤의 전칭작품인 [고사탁족도(高士濯足圖)]는 비록 [시주도]와는 분명 솜씨가 다른 작품이기는 하지만 이경윤이 즐겨 그렸던 소경산수인물화(小景山水人物畵)의 한 전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참고가 된다. 물가 의 나무밑에 앉아서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선비와 옆에 시중들며 서 있는 동자를 묘사한 이 그림은 나무와 언덕만을 배경으로 하고 인물에 역점을 둔 전형적인 산수인물화이다. 반원을 이룬 나무밑에 고사(高士)를 배치하여 알찬 구성의 묘를 이루었다. 구성이나 암벽의 처리나 인물 의 묘사 등 모든 면에서 절파화풍을 보여준다. 이러한 구성과 화풍은 그밖에 그의 작품으로 전해 지는 여러 작품들과 윤정립(尹貞立)의 작품들에서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역시 국립박물관 소장의 [산수인물도]<도 >는 대경산수인물(大景山水人物)을 묘사하였 다. 산과 언덕들은 흑백의 대조가 강렬한 면(面)들로 이루어져 있고 또 비스듬히 솟아오른 산들의 모습에 절파풍이 역연하다. 여러 산들이 복잡한듯 솟아 있지만 넓은 공간과 두드러진 거리감이 묘사되어 있어 이 시대의 특색을 반영하고 있다.

윤의립·이정·이영윤·이징

이경윤과는 달리 그보다 좀 후에 활약했던 17세기초의 문인화가 윤의립(尹毅立)은 안견파화풍 과 남송의 하규 화풍을 수용하여 그렸던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사계산수도] 화첩중에 서 [추경산수도]는 산이나 바위의 묘사는 물론 수지법에서도 남송 하규화풍의 영향을 반영하고 있으나, [동경산수도]는 모든 면에서 안견파의 영향을 보여주고 있다.

조선중기의 산수화에서 엿볼 수 있는 전통의 계승과 새로운 화풍의 창작문제는 이숭효의 아들 인 이정의 작품들에서 더욱 뚜렷이 나타난다. 그의 [산수도]는 구도면에서 안견파의 영향을 보여 주면서도 산과 바위의 표면묘사에는 절파화풍의 영향이 드러나 있다. 한 작품에 두가지 상이한 경향이 혼합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이정의 숙부인 이흥효의 [산수도]에도 나타났음을 이미 보았다.

이 [산수도]보다 더욱 주의를 끄는 것은 이정의 산수화첩이다. 이 화첩의 열두폭 그림들은 앞 에 살펴 본 [산수도]와는 달리 당시로서는 매우 참신한 화풍을 보여준다. 구도나 필묵법 등 모든 면에서 남종화법과의 접촉을 시사하고 있다. 이 점은 그가, 남종화의 대표적 화보인 {고씨력대명 인화보(顧氏歷代名人畵譜)}의 서문을 썼고 우리 나라에 명의 정사(正使)로 왔던 주지번(朱芝蕃)과 만나 격찬을 받았고 북경을 다녀왔던 사실과도 부합되는 것이다. 사실상 1600년 전후한 시기에는 이미 남종화가 전래되어 부분적으로 수용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이영윤의 [방황 공망산수도(倣黃公望山水圖)]를 비롯한 일부 작품들은 당시에 전래되었던 남종화의 한 양상을 보 여주는 자료가 된다. 이영윤의 이 작품은 [피마준법(披麻法)] 동글동글한 반두(礬頭), 옥우법(屋宇法), 수지법(樹枝法) 등에서 남종화의 영향은 분명하게 드러내며 전형적인 남종화의 수용을 입 증해준다는 측면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이상의 작품들을 통해서 보면 이정은 30년의 짧은 생애동안 안견파화풍, 절파화풍, 남종화풍의 세가지 화풍을 바탕으로 작품활동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중기의 화가들 중에서 누구보다도 보수적인 경향을 띠고 있었던 사람은 이경윤의 서자인 이징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이징의 [니금산수도(泥金山水圖)]들은 그가 그의 아버지인 이경윤과 는 달리 안견파화풍을 좇아 그렸음을 보여준다. 다만 분산된 듯한 산들의 모양이 그의 특색이라 하겠다. 또한 그의 [평사락안도(平沙落雁圖)]와 [연사모종도(煙寺暮鍾圖)] 등은 그가 안견파 화풍 을 주축으로 하고 있으면서 산과 바위 등의 처리에 절파의 기법을 구사하고 보다 넓은 공간을 표 현하고자 하였음을 보여준다. 이밖에도 이징은 당시에 내조(來朝)하여 궁중에서 활동했던 중국인 화가 맹영광(孟永光)과도 친하게 지냈다고 하나 전혀 그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 안보인다. 맹영광 의 영향은 오히려 이명욱(李明郁)의 [어초문답도(漁樵問答圖)] 등 일부 후대의 작품들에 엿보인 다.

김명국·조세걸

17세기 조선중기의 화단에서 가장 강렬한 화풍을 이루었던 사람은 화원 김명국이었다고 하겠 다. 그도 안견파화풍을 따랐던 것이 사실이나 보다 그를 돋보이게 하는 것은 활달한 필치의 선종 화(禪宗畵)와 개성이 강한 절파풍의 산수화이다. [설중귀려도(雪中歸驢圖)]나 [심산행여도(深山行旅圖)] 등은 산이나 바위의 처리가 대담하고 필묵법이 강하며 나무도 거칠게 표현되어 있어 전체 적으로 강렬하고 호방한 느낌을 짙게 풍긴다. 특히 주산의 표현 등에는 대담한 필치가 더욱 뚜렷 이 엿보인다. 절파화풍 중에서도 소위 [광태(狂態)]적인 경향을 역력히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경 향은 그의 기타의 작품들에도 다소간의 차이를 드러내며 나타나 있다. 김명국에 이르러 조선중기 의 절파화풍이 정점에 도달하였다고 보아도 크게 무리가 아닐 것이다.

김명국의 화풍은 그의 제자인 조세걸(曺世杰)에게 전해졌으나 [심산풍우도(深山風雨圖)]에서 보 듯이 이미 그 수준은 훨씬 떨어졌던 것이다. 이처럼 조선중기를 풍미한 절파화풍은 김명국을 정 점으로 하여 하강세에 들어섰던 듯하다.

지금까지 개략적으로 살펴보았듯이 조선중기에는 초기에 전통이 확립된 안견의 화풍, 남송원체 화풍, 절파화풍 등이 산수화에서 자주 그려졌으나, 특히 절파화풍이 제일 크게 유행하였다. 이밖 에 이영윤등 일부 화가들 사이에서 남종화풍이 수용되기 시작한 것도 크게 주목된다. 이 시대의 화가들은 두서너가지의 화풍을 추종하는게 상례였으며 대체로 전통성을 강하게 띠고 있었다. 따 라서 조선초기의 화풍을 완전히 외면했던 화가는 거의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전통을 계승하면서 새로운 화풍을 수용하여 자신의 양식을 형성하는 것이 보편적인 경향이었다. 이러한 조선중기 화 단의 경향은 조선후기에 들어서서도 윤두서(尹斗緖) 등 일부 화가들에 의해 추종되었으나 곧 진 경산수(眞景山水)와 남종화의 유행 등 후기의 새로운 경향에 압도되어 쇠퇴하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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