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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화의 종류 >>

궁전·사원·교회·동굴·고분 등 자연 또는 인공이 가해진 건조물의 내외벽면(內外壁面), 천장· 기둥 등에 그린 그림의 총칭. 그 종류는 동서양·시대·수법 또는 건조물의 성질·종교·주술· 기념(紀念)·유락(愉樂) 및 예술적인 목적에 따라 여러 유형으로 분류된다.

【종류】 벽화 자체의 성격적 분류도 있겠으나 제작 및 재료의 차이로 분류했을 때도 벽화는 벽면과 깊은 관계가 있어 조지벽화(粗地壁畵)·화장지(化粧地)벽화·첨부(添附)벽화의 셋으로 대별할 수 있다.

① 조지벽화:1879년 북에스파냐의 알타미라동굴에서 발견된 들소의 그림처럼 자연석재 위에 덧칠을 하지 않고 직접 안료로 그린 것 등이 있다.
② 화장지벽화:그림을 그릴 면에다 칠을 하고 그 위에 안료로 그린 것이다. 곧 아브온 프레스코화법(畵法)이라 하여 칠을 한 벽면이 마르기 전에 물감으로 그리는 것으로, 이 방법이 많이 쓰이고 있어 벽화를 흔히 아브레 프레스코 또는 프레스코라고도 한다. 이 밖에도 회칠 또는 덧칠한 것을 완전히 건조시킨 뒤 아교로 갠 안료로 그린 아세코화법이 있다. 또 르네상스시대에는 프레스코라 하여도 아세콘을 같이 썼거나 회칠이 마른 후 템페라로 수정 가필을 한 화법이었다.
③ 첨부벽화:테라코타에 그린 그림을 벽면에 붙이는 방법과 캔버스에 유채(오일 컬러)로 그려 그것을 벽에 붙이는 방법이 있는데 17세기 이후의 벽화는 주로 이 방법을 많이 썼고 고대로부터 중세까지는 모자이크벽화가 많았다.

【한국의 벽화】

무용총 수렵도

석벽에 채색 무용총 널방 서벽
5세기말 6세기초

한국의 벽화로서 대표적인 것은 고구려 고분벽화이고, 신라·백제·고려의 고분벽화도 몇 기 전한다. 고구려 고분은 옛 도읍지였던 만주(滿洲)의 퉁거우[通溝] 일대, 평양 부근, 황해도 안악지방에 분포되어 있다. 그것은 중국 육조(六朝) 양식의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고구려인의 높은 기상과 예술성을 알 수 있다. 벽화 내용은 청룡·백호·주작, 현무의 사신그림[四神圖], 일월성수(日月星宿)·당초문(唐草文)·연화문(蓮花文)·구름무늬[雲文]와 무용·수렵·행렬을 하는 풍속도, 인물을 주제로 한 인물도 등이며, 내용이 풍부하고 고구려 사람들의 음악·미술·건축 외에도 오락·수렵·전투 등의 일상생활과 종교·신앙 등의 정신적인 면도 생각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이와 같은 고분벽화는 일본 고분벽화에도 크게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고분벽화를 제외하면 한국 벽화는 그리 많지 않은 편이며 충남 예산(禮山) 수덕사(修德寺)의 대웅전에 야생도(野生圖)·수화도(水畵圖)가 남아 있고 경북 영풍(榮豊)의 부석사(浮石寺) 조사당(祖師堂) 벽에는 보살상과 인왕상이 남아 있다. 이 밖에 강진(康津) 무위사(無爲寺) 극락전의 후불벽화, 위봉사(威鳳寺)·문수사(文殊寺)·흥국사(興國寺)· 선운사(禪雲寺)의 후불벽화 등도 알려졌다.

【중국의 벽화】 동아시아의 건축은 그 재료·양식·구조가 서남아시아나 오리엔트, 유럽과 다르고 건축물 벽면의 형식·구조, 그리고 벽면에 그림을 그리는 정신적 요구도 달랐다. 중국벽화의 시원(始源)을 찾아보면 《사기(史記)》에 걸왕(桀王)이 와실(瓦室)을 만들었다고 되어 있어 기와와 나무로 큰 건축물을 지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후에 명당(明堂)으로 발전하여 당(堂)·전(殿) 등의 궁전·왕릉·묘사(廟祠) 등이 세워졌는데, 주나라 때 궁전 정문에 호랑이, 명당문(明堂門)에 명군(明君)의 제상(諸像), 왕후(王侯)의 묘사에 여러 가지 그림을 그린 것이 있으므로 중국벽화는 이 시대에 이루어졌다고 하겠다. 주나라의 벽화가 변천·발전하여 한대(漢代)로 내려오며 그것은 전시대(前時代)와는 달리 높고 큰 여러 궁전이 세워지고 벽화의 규모도 한층 장엄하고 화려해지며 제재(題材)도 도교·유교를 배경으로 풍부한 주제로 발전하였다. 또 한편 후장(厚葬)의 습속으로 능묘(陵墓)·묘사의 벽화장식이 유행하며, 묘사의 벽석(壁石)에 음각과 양각으로 부조한 각화석(刻畵石)도 벽화의 일종으로 보는데 무씨사(武氏祠)나 그 밖의 화상석(畵像石)이 유명하다. 위·진·남북조시대(魏·晋·南北朝時代)의 벽화도 궁전·묘사의 벽화의 발전이며, 그 후 서역에서 발달한 불교사원이 중국에 수입되자 새로운 불교 벽화가 4세기경부터 유행하였다. 곧 366년 둔황[敦煌]에서 비롯하여 당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석굴사원의 벽화가 그려져 순수한 종교적인 벽화로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궁전·사원·묘사의 벽화는 수·당나라 때에 성행하고 특히 사원벽화는 양과 질에서 모두 크게 발전하여 당시 회화의 주체를 이루었다. 이 밖에 벽이나 가(架)에 거는 이동가능한 비단그림이 그려져 쟁(I)이라고 하는 불화와 세속화도 유행하였다. 송나라에서 청나라 때까지의 벽화는 궁전·귀족의 저택·묘사·불교사원의 소장(消長)과 함께 변화하였다고 하겠으며, 소화면(小畵面)의 감상화가 발달함에 따라 벽화는 점차 형식화되어갔다.

【유럽과 고대 오리엔트벽화】
고대벽화는 인물·동물·산수(山水) 등을 간결하게 표현하여 형상· 문자와 같이 어떤 약속적 형태(約束的形態)를 나타내었다. 유럽에서 벽화의 가장 오래 된 유존례(遺存例)는 구석기시대의 인류가 동굴과 자연암석 벽면에 남긴 화상인데, 유럽 구석기시대의 동굴벽화로는 1879년에 발견된 북부 에스파냐의 알타미라 동굴벽화, 78년에 발견된 사보트 동굴벽화, 95년에 발견된 다야크의 동굴벽화, 96년에 발견된 라 모스 동굴벽화, 97년에 발견된 말라스 동굴벽화 등이 유명하다. 다음 고대 오리엔트의 신전·궁전·분묘 등 건조물의 벽면에 남아 있는 대표적인 것으로는 이집트의 묘실장식(墓室裝飾), 메소포타미아의 마리유적의 벽화, 그리스의 선주민인 에게민족이 남긴 크레타섬의 크노소스궁전의 벽화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에서는 BC 5세기 초까지는 프리미티브 양식의 벽화가 유행하였으나, 포리그노토스·미콘·파나이노스 등과 같은 대화가의 출현으로 BC 5세기 중엽부터는 알카이크 양식의 약속적 형태나 표현으로부터 탈피하여 인간의 자유로운 자태와 사실(寫實)에 가까운 이상적인 기법으로 모든 형상에는 입체감을 넣는 화법도 나왔다. 이러한 작품으로는 델후호이의 스토아, 레게스의 벽화 등이 유명하다. 또 폴리그노토스의 작품인 델포이의 벽화 《트로이 함락(陷落)》과 《황천(黃泉)의 오디세우스》에서는 인간의 자태, 운동의 자유, 다양한 정신표현 등의 복잡성까지도 엿볼 수 있다. 그 후 BC 5세기 말부터 BC 4세기까지는 인간과 사물에 음영법을 사용하여 입체표현을 하고 색채도 사실적 표현을 하게 되었다.
기원 전후의 작품으로 로마나 폼페이 등지에서 발견된 그리스·로마의 벽화는 원근도법에 의해 입체감을 살린 인물들을 배치하고 있다. 그 뒤 중세에 이르러서는 교회당 내부 전체의 큰 벽면에 그리스도교적인 제재를 다룬 벽화장식이 유행하여 벽화도 발전하였다. 하지만 중세에는 프레스코화법보다 호화롭고 견고한 모자이크화(畵)가 더 존중되어 많은 교회당을 장식하였다. 한편 서유럽에서는 스테인드 글라스가 유행하여, 벽화장식에 많이 이용되었으나 회화적 제작의 영향은 강한 윤곽선이나 강렬한 색채 등을 사용한 벽화 쪽에 더 나타나 있다. 이와 같이 중세에 채용된 양식은 고대 말기의 사실주의와 부흥된 오리엔트의 프리미티비즘과의 절충·융합에서 이루어진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선·색·형으로 그 양식이 발전하였다. 따라서 양식적으로 고대 벽화보다는 복잡해졌으며 또 중세 후기에는 회화에 대하여 현실표현의 요구가 강해져 모자이크화나 스테인드 글라스의 기법으로는 미처 이에 부응하지 못하게 되었다. 벽화는 이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 따라 동유럽·이탈리아 등지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하였는데 조트의 벽화가 그 좋은 예이다. 그리고 이보다 1세기쯤 뒤인 마사초(1401~28?)의 칼미네교회 벽화는 새로운 과학적 투시도법(透視圖法)에 의해 구성되었으며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로 이어지는 1세기 동안 르네상스벽화가 크게 개화(開花)하였다. 16세기 이후 유채화가 크게 진출하자 유채벽화로 유명한 루벤스(1577~1640)의 《마리 드 메디시스 일대기(一代記)》 (루브르미술관 소장)가 제작되었는데, 이 작품은 풍부하고 윤택한 색채로 세밀하게 대상을 묘사하여 이 기법의 우수함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 때부터 유채화포(油彩畵布)가 벽화장식으로서 등장하고 근세 이후에 크게 유행하게 되었다. 중세 후기부터는 건축장식과는 별도로 서양에서는 판화· 액자그림이, 동양에서는 족자·병풍화가 독립된 형식으로 개인적 시각에 대응하는 회화로 나타났다. 이것은 근세 회화사의 발전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고 최근에 이르러서는 현대건축물에도 벽화 외에 예전처럼 모자이크화나 스테인드 글라스 및 다베스트리 등이 나타나 벽면 장식적인 효과를 내는 경향이 크게 늘고 있다.

고분벽화 ( 古墳壁畵 )

널방[墓室]의 벽면에 그림을 그린 고분. 원칙적으로는 도료를 사용하여, 어떤 구상적(具象的)인 묘사를 하는 것을 말하지만, 단지 장식무늬적인 것이나 선각화(線刻畵)·부조(浮彫) 따위도 포함하는 경우가 있다. 주로 왕후 귀족의 대규모적인 무덤의 벽면에 초상·생전의 생활·장의(葬儀)·사후의 세계 등을 그린 것이 많다. 유럽에서는 에트루리아의 것이 유명하고, 타르퀴니아에서는 BC 6세기경부터 많은 벽화무덤이 있었다. 로마나 헬레니즘 세계에도 그 예는 있고, 이집트에서는 선왕조시대(先王朝時代)의 히에라콘폴리스에도 있었으며, 제3왕조 때에 왕후 귀족의 묘에 벽화나 채색 및 부조가 많았고, 신왕조시대의 테베에서는 묘의 벽화가 주가 된다. 중국에서는 전한(前漢)의 중원지역(中原地域) 호족층 무덤에서 비롯되어 후한(後漢)·위진 남북조시대(魏晋南北朝時代)의 벽돌무덤에서 벽화를 볼 수 있다. 당(唐)나라의 이수묘(李壽墓)·영태공주묘(永泰公主墓) 등이, 송(宋)나라의 창사[長沙] 조대옹묘(趙大翁墓)가, 원(元)나라의 산시[山西] 벽돌무덤 등이 유명하다.
한국에서는 낙랑(樂浪)의 219호분, 고구려의 안악(安岳) 3호분, 각저총(角抵塚)·무용총(舞踊塚) 등 다수이고, 초상과 각종 생활·풍속·사신(四神)·신선(神仙)·일월성신(日月星辰) 등을 그리고 있다. 백제에서도 송산리(宋山里) 6호분·능산리(陵山里) 2호분 등이 있고, 무령왕릉(武寧王陵)에서도 소감(小龕) 주위에 채색이 있다. 신라·가야에서도 양주동(楊州洞), 고아동(古衙洞) 등이 있다. 일본에서는 나라[奈良]의 다카마쓰총[高松塚] 고분의 벽화가 한국· 중국과의 관련을 나타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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