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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미술

유 준 상


     1) 주체사상과 주체미술

    북한미술의 전체성(全體性)의 성격은 견고한 콘크리트구조물을 연상 시킬만큼 확고하고

    분명하다. 남한의 경우처럼 유파(流派)라던가 양식 또는 이념등의 차이에 따라 다양한

    미술형식이 공존하고, 따라서 이것을 이해하기위해 개별적인 차이를 판독해야 되는 번

    거로움이, 북한미술의 경우 전혀 필요 없는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북한의 사회구조의

    구조적 특성 때문으로 생각되며, 북한의 미술가도 다른 사회적분업과 일체를 형성하는

    기반구조의 단위(單位)에 불과 하다는걸 말해준다고 하겠다. 북한미술은 그것을 창조하고

    제산하는 미술가의 개별적인 관심으로부터 유발되는게 아니라, 일의적 필연으로 연역

    (演縡)된 교시(敎示)에 따라 북한체제 그것을 특징지우는 법칙을 지키는데서만 미술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미술가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북한사회를 구성하는 구조

    적단위로서의 「개체」를 뜻하는게 된다. 여기서의 개체는 남한의 미술가처럼 자율적이고

    독자적인 예술적 개성으로서의 개인을 뜻하는게 아니라, 북한사회의 「주체적」인 전체성을

    구성하는 단위로서의 개체를 가리키고 있다. 이것을 도식적으로 설명하면, 한 사회의

    전체성은 여러 요소들로 구성되지만 그 요소의 하나 하나는 그 사회의 체제를 특징 지우는

    법칙에 따른다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미술가는 개별의 자율과 일회성을 실험하는데서

    미술을 발휘 하는건 아니며, 사회의 체계가 요구하는 전체성을 충실히 이행하는데서 미

    술을 발휘한다고 하겠다. 이것이「주체미술」이다.

    주체철학은 처음으로 자주성과 창의성, 의식성이 사회적 존재인 사람의 본질

    적특성을 이룬다는 것을 밝힘으로써 인간에 대한 완벽한 해명을 주었으며 자연과

    사회를 지배하고 개조하는 주인으로서의 사람의 지위와 역할에 대하여 올바른

    해명을 주었습니다....

     

    (김정일 : "주체철학의 이해에서 제기되는 몇 가지 문제에 대하여")

    주체사상은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철학적원리에 기초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의 「사람」은 앞에서 비유했던 자율적이고 일회적인

    개성은 아니다. 다르게 말해서 (귀족처럼 사색(思索))하는 사람도 아니며 (사대부처럼

    감수(感受))하는 사람도 아니다. 누구나 싫어하는 사람을 가리키고 있다. 따라서 여기서의

    「사람」은 자기생산적이고 능동적인 태세로서의 「주체」를 뜻한다. 김정일은 마르퐈스레

    닌주의적 입장에 기초해서 자신의 주체사상을 발전시켰다고 밝히고 있듯이 여기서 우리는

    「주체사상」의 실체가 「노동계급」이라는걸 알게 된다.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건설하기 위한 노동계급의 혁명은 본질에 있어서 수령

    (김일성=필자주)의 혁명사상을 사회생활의 모든 면에 구현하기 위한 역사적

    위업이다. 때문에 근로인민대중을 수령의 위대성과 불멸의 업적으로 무장시키는

    것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미술앞에 나선 가장 중대한 기본과업으로 된다.

    (조인규 . "조선예술" M85. 8월호)

    미술가들이 우리 당이 걸어온 간고하고 줄기찬 혁명의 길과 우리 인민의 영

    웅적 투쟁 모습들을 미술작품에서 훌륭히 형상해낸 것은 매우 좋은 일입니다. 미

    술작품의 내용에서 뿐만 아니라 표현수법과 기교에서도 커다란 진보가 이루어

    졌습니다

     

    (김일성 : "사회주의문학예술론" 432p)

    위에 인용한 조인규의「노동계급」과 김일성의「미술가들」은 사회적분업(社會的分業)의

    직종(職種)으로 유별되는 호칭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또는 신분위계의 칭호로 생각하려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자유세계의 사람들에게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통념(通念)

    으로서의 지식관이라고 하겠다. 상대적으로 말해서「예술」은 하나의「직업」(메티에)인

    가.. 의 문제가 여기서 말하는 미술가의「주체성」을 열어주는 열쇠가 된다는 뜻이며, 그

    자물쇠는 북한인「공화국」의 사회체제(다른 공산국가에 있어서도 얼마전 까지는 획일적

    으로 적용되었던....)속에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겠다.

    북한의 미술가는「미술가동맹」에 가입함으로서「미술가」가 되며, 미술을 제산(製産)

    하는「주체」가 된다. 자유진영의 경우처럼 자율직업의 직종(?)은 아니며 결코 개별적인

    선택 또는 가치관 혹은 관심으로 유발되는건 아니다.

    예술의 기원을 노동설로 보건 제기설로 보건간에 그 감성적 유발원은 유회(에퍼큐로스)

    였다는게 전체주의 사회체제가 갖는 공퉁적인 견해이다. 멀리는 그리스의 「공화룩」에서

    예술가를 불필요한 존재로 여겼으며, 가깝게는 1930년대의 나찌독일인「민족사회주의」

    체제가 예술박멸운동(반달리즘)을 야기했던게 그 실례이다. 이러한 거부반응은 예술에

    관한 「가치관」의 대립되는 입장을 반영하고 있다. 근세에 대두된 사회학파의 입장에선

    (미적 능력의 이상한 발달은, 도덕적인 견지에서는, 하나의 중대한 병적증세이다)(듀르겜)

    로 비치기까지 한다. 예술이 사회적분업과 일체를 형성하는 직업으로 나타나는건 16세기의

    「누가」조합(이태리 북구지방)과 화란의「길드」협동조합이다. 한반도에서도 조선조의 태

    조원년에 도화서(宜畵暑)라는게 창설되어 한일합병시까지 그런데로 유지되지만, 이것은

    사회적 분업도 직종도 아니었다. 사회 그자체가 .미분화의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민족예술이라고 자랑하는 고려청자, 조선조의 백자와 목기등을 제산(푸토덕

    티브)한 당사자인 「예술가」들은 무명(無名)의 천민(雌民)에 불과했던 것이었다. (이점

    남북의 문화행정당국은 유의할 필요가 있다)

    자기의 고유하고 훌륭한 미술형식을 가지고 있으면서 구태여 남의 것을 본따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조선화를 업수히 여기고 서양화만 내세우려는 것은 민족허

    무주의이며 사대주의적 경향입니다. 지금 서방제국주의의 나라들과 자본주의 나

    라들에서는 그림을 보고도 그것이 무슨 그림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이른바 추

    상화가 판을 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썩어빠진 부르조아적 사상조류가

    우리나라 미술계에 밀려들어오지 못하도륵 강하게 투쟁해야 하겠습니다.

    (「사회과학외 의무에 대해서」)

     

    위에 인용한 글 가운데의「그것이 무슨 그림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이른바 추상화가

    판을 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썩어빠진 부르조아적 사상조류가..」의 「썩어

    빠진」「추상화」는 바로 작품을 가리킨다기보다. 그것을 창조(?)한 예술가의 「주체성」을

    뜻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겠다. 그러니까 「썩어라진」주체에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이른바 추상화」밖에 나타날리 없다는 거며, 예술의 「주체」인 「노동자계급」으로서의 미

    술가는 「미술」을 「노동」의 과정을 통해, 즉 (예술적작업)(워크 오브·아트)과 (기능적

    작업)(워크 오브 오퍼레이션)의 종합단계에서 실천(푸락시스)될 때 물(物)적인 제작

    (포이에시스)이 되는거며 따라서 사회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예술은 사회적 분업의 입

    장에서 보면 물제작적 능(skeuopoetique)과 어렵고 쓰라린 시상(詩想)에 관한 카테고리와

    원리의 총체를 일컷는 다고 프랑스의 미학자 E 스리오는 정의한 바 있다)

    여기서 결론적으로 제기되는 문제는 다음의 의문이라고 하겠다. 그러면 「노동계급」

    으로서의 「미술가」는 무작정 시키는데로 미술의 일을 해야만 하는가....이다. 결과에 대한

    예측(컨텐푸레이션)도 없고 개별로서의 관심과 평가도 없이 다만 기계처럼, 전혀 습관

    적으로 어제의 일을 끝없는 미래로 되풀이해야 하는가가 문제된다고 하겠다. 이것은

    「정신위생학」의 기본과제이기도 하다.

    공산주의는 인간의「자기소외」(괄호: 필자)로서의 사유재산을 적극적으로「지

    양」(止場=괄호: 펼자)하고,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인간성을 진정한 의미로서

    획득하는 것이 다. 따라서 공산주의란 사회적인 인간적 존재로 되돌아가는 일이며....

    ... 그리고 존재(存在)와 본질(本質)과의 대상화(對象化)와 자기확인과의, 자유와

    필연과의, 개(個)와 유(類)의 관계사이의 투쟁의 진정한 해결이기도 하다. 이것은

    역사의 불가사이의 해결인 거며, 또한 이것이 해결로 이르는건 자명하다고 하겠다.

    (칼·마르크스「경제학·철학노트」)

    미술을 창작한다는건 칠한다든가 그린다든가 하는 작업(일)을 거쳐서 실천된다. 제

    아무리 고원한 이상을 가지고 있어도 소용없다. 그것은 감각적 확실성으로 확인할 수

    없다. 이처럼 제작된 작품은 하나의 결과로서 작가를 떠나, 「자기소외」로서의 물질적존

    재로 남게 된다. 그러나 이처럼 자기를 떠나버린 작품을 통해 작가는 자신이 얼마큼

    표현할 수 있는지를 반성하게 되며, 이것이 계기가 되어 새로운 작업을 하게 된다. 가령

    조각을 예를들면, 자연의 돌에 인간의 정신과 노동이 합쳐서 그것을 조각작품으로 만들

    었다고 했을 때, 그 제작과정에선 인간과 돌이 하나로 어우러져 분리될 수 없었으나 일단

    작품이 완성되면, 작품은 작가로부터 떨어져나간다. 이경우 조각작품은 인간화(人間化)된

    물질(物質)이며, 이러한 결과를 우리는 「조각」이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인간은 물질을

    퉁한 자기생산의 과정을 작업(노동)함으로서 경험하게 된다는 거며, 일단 제작된 작품은

    그속에 작가를「자기소외」(自己疏外)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제작된 작품은 그 작가의 작업의 역량을 측정하고 반성하게 하는 대상물로

    대립된다. 그래서 작가는 더욱 훌륭한 작품을 제작해야 하겠다는 자기 생산의 충동을

    느끼게 되며, 이러한 대상화의「지양」(고칠 것은 고치고 배제할 것은 버려서 보다 높은

    단계로 발전 종합시킨다는 뜻. 이 말은 원래 변증법의 개념으로서 (비교적 빈약한 추상적인

    상태로부터, 보다 풍족하고 구체적인 상태로 이행시키는 발전을 뜻한다. 정립은 반정립을

    낳고 반정립은 정립의 모순을 극복하는 단계에서 종합으로 발전한다는게 그것이다)의

    과정으로 일하는 사람들의 낙원을 건설하자는게 마르크스의「정신위생학」이었다.

    그리고 1917년 10월 러시아가 이러한 낙원건설의 선두주자로 등장하게 된다. 그러나

    1963년을 전후해서 소비에트에서 제기되었던 이른바 (예술논쟁)은 마르크스의「개(個)와

    유(類)의 관계사이의 투쟁의 진정한 해결.1을 전혀 「자명」하지 않은 것으로 변질시킨바

    있었다. 당시의 수상 후루시쵸프는 자본주의 국가와 공산주의 국가는 평화공존 정책을

    계속하지만 문학, 예술의 세계는 이데오르기의 세계이기 때문에 국내문제로 제한되며,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원칙을 당성으로서 고수한다는 것이었다. 당시의 소비에트는 추

    상미술, 전위미술의 경향들이 시도되는 시기였으며, 파스테르나코, 솔제니친, 에프토첸

    코등이 소비에트관료제 비판을 일삼던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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