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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미술에 대한 이해>

 

북한의 주체미술은 김일성의 주체사상 위에서 형성된 미술이다. 주체사상은 자주성.의식성. 창조성을 강조하는 사상으로 마르크스 유물론에 기초한 여타 사회주의권의 사상보다도 한 단계 발전한 북한만의 독창적인 사상이다. 구 소련에는 레닌주의가 ,중국에 마오니즘이 있었다.면 북한에는 김일성주의로서 독자성을 형성하고 있다. 북의 주체사상은 김일성을 정점으로 당과 인민으로 이어지는 피라미드식 구조를 보여주는 연역적 사고논리가 그대로 예술이론에도 적용되어 있다. 따라서 남한의 자본주의적 개인주의나 민중주의 예술론 시각에서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있고 통일 예술 과정에서 극복해야 할 과제도 안겨주고 있다.

주체미술 이론체계는 자주성,당파성, 계습성, 인민성으로 요약되어 있다. 북한의 헌법에 ‘민족적 형식에 사회주의적 내용을 담는다.’라고 명시되어 있으며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라는 것도 자주성을 높이는 조선식 양식이라는 점에서 주체미술의 특성을 보여주게 된다. ‘주체를 세운다는 것은 혁명과 건설의 모든 문제를 독자적으로 자기나라의 실정에 맞게 그리고 자체의 힘으로 풀어 나가는 원칙을 견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주장함으로서 6.25전쟁 이후 소련의 후르시초프 수정주의와 미국의 패권주의 경쟁에 의한 냉전체제의 재편이라는 국제환경속에 고립화된데 대한 대응이자, 전후의 폐허 화된 북한의 건설 및 박헌영 일파 숙청 후 인민단결을 촉진하는 북의 민족주의 색채가 농후한 주체사상의 발전은 예술의 변화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시기 예술을 새롭게 전환시키려는 김일성의 안목은 민족문화의 계승과 창조성의 추동이라는 지도력을 다방면에서 발휘하고 있다. 민족문화를 계승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긍정시하는 복고주의나 무조건 부정하는 허무주의적  태도를 모두 비판하고 있다. 특히 외래문화로서 일제문화가 끼친 해독을 철저히 비판, 그 잔재청산에 주력하면서 남한에 침투한 미제의 양키문화, 외색 외풍이 판치는 문화가 제국주의자들의 신식민지주의의 정책의 주된수법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협애한 민족주의 및 국제주의 정신과 결합되어야 할 것을 주장함으로서 자신이 국수주의자가 아님을 역설한다. 이같은 원칙에서 김일성은 미술분야에 대한 시시비비를 가리고 있는데, 그 내용은

“조선화를 업수히 여기고 서양화만 내세우려는 것은 민족 허무주의이며 사대주의 사상이다” “조선화는 동양화의 고유한 미술형식으로 우리 시대에 맞게 발전시켜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미술은 생동한 현실을 떠나서 순전히 주관주의와 형식주의 자연주의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유화도 조선사람의 감정에 맞게 우리 인민의 정서와 감정에 맞게 우리 인민의 생활을 간결하고 선명하고 섬세하게 묘사한 것이 좋은 그림이다,”  “예술의 진정한 평론가는 인민들이다. 인민보다 더 총명한 평론가는 없다. 인민들의 판정에 합격한 작품이 좋은 작품이다.”이러한 김일성 어록들의 교시는 당 차원에서 문예 정책의 골격이 되었고 주체미술의 이론과 실천을 위한 지침이 되어 왔다. 형식면에서 수묵화보다도 채색화기법을 우선시하였고 농채(진채)기법 보다는 담채기법을 발전시켰다. 특히 단붓질 (몰골법)의 효과를 선호하였다. 이를 위해 조선화 물감과 종이개발에 정책지원을 했던 것으로 보이며 지금도 조선화(동양화) 지망생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남한 미술계(서양화)와 정반대 현상이다.

상대적으로 빈약한 유화기법은 조선화 기법에 준하는 추종적 성향을 보임으로서 유화물감의 기술개발이나 기법상의 다양한 변화가 막히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미술 장르면에서 출판화, 대형 선전화, 벽화, 수예그림 등이 특이하다. 개인화보다도 공동으로 참여하는 집단화가 많은 것이 집단주의적 사회가 낳은 형식의 반영이다. 그림에서 거의 일관되게 원근법적 묘사에 충실함으로서 개인의 창의성이나 연대기적으로 양식의 변화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미술의 기초 교육으로서 서양인 석고모델 데생이라는 상투성을 철폐하고 조선인 모델 찾기를 내세운 것은 남한의 석고데생 교육의 문제점에서 볼 때 바람직한 방법이다. 내용면에서 보면 인민들의 생활 속에서 김일성의 영도력을 갖가지로 보여주는 영상회화, 영상조각은 최고의 가치로서 취급받고 있으며 작가들에게 명예칭호로 내려주는 영웅, 인민, 공훈 등의 칭호는 곧, 작가의 등급을 나타내는 것으로 북한 작가들의 경력 속에 거쳐 가야 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김정일에 대한 영상 그림이 늘고 있어 김일성 사후의 변화를 말해주고 있다.

남한 자본주의를 고발하는 그림들은 자료를 참고 하지 않고 변화된 양상을 보지 못한 탓인지 객관적 묘사로서 설득력이 없다. 자의적인 묘사는 실제로 이북작가들이 남한사회 정보에 어둡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가장 많은 인민작가를 보유하고 잇는 만수대창작사를 비롯하여 평양, 함흥, 개성 등 각 지역과 군대, 철도, 제철소 같은 직장에 창작사 들이 있으며 이들 전문작가들은 조선 미술가동맹의 산하 직원들이다. 이들은 미술을 취미 삼는 노동자, 농민들을 지도함으로서 군중미술을 형성한다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재능있는 사람을 발견하면 추천하여 전문가로 양성하며 조선미술전람회라는 공모전을 통해 등단시킨다. 남한처럼 초대작가,추천자가라는 경력의 기득권을 인정하지 않으며 미술인의 인명사가 없어 개인의 경력 파악은 어렵다. 물론 유통 시장이 없으므로 상행위는 존재하지 않으며 좋은 작품은 정부에서 매입하여 보관한다. 다만 외화벌이로서 상품화할 수 있는 작품들을 외국 관광객들에게나 해외시장 선보이는 일은 근래의 양상이다.

초기(첫 시기)에는 월북작가인 정종여, 리석호, 김주경, 문학수, 길진섭의 활동이 두드러지고 작품으로는 김일성의 항일투쟁을 극화한 정관철의 유화 <보천보의 횃불 -1948>을 최고로 추켜 세운다. 이시기를 사실주의적 묘사방법의 확립기로 본다. 두 번째 시기는 조선화로서 작가들의 창작 열기가 가장 활발하고, 많은 작품들이 쏟아지는 시기이다. 특히 김일성이 칭찬한 작품으로는 리창의 조선화(낙동강 할아버지 -1966), 김의관의 조선화 <남강마을의 녀성들 -1966> 등이다. 그 밖에 선전화로서 곽흥모의 <동무는 천리마를 탔는가 -1958>를 대표적인 성과 작으로 보고 있다. 세 번째 시기는 주체미술의 대 전성기로 보고 있으며 작가들의 세대교체 따른 전후세대들이 대거 등장한다. 1966년 국가 미술전람회에 김일성이 직접 현지 지도하였고 1969년, 71년, 74년의 전람회장에는 김정일이 세세 하게 현지 지도하였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북한 미술사는 주체의식의 시대적 흐름이다. 대중들이 이해하기 쉬운 점은 있지만 민족형식의 다양성은 갖고 있지 않다.

고구려 무덤그림이나 탱화, 민화 등에서 볼 수 있는 민중 감성의 원초적 소박성이나 역 원근법, 부감법, 분할법에 대한 시점의 접근이 없다는 점이 주체미술의 방법적 한계이다. 주체미술의 원칙적 이론교시가 옳다 하더라도 작품 창작은 김일성의 경험사례가 아닌, 작가 자신의 개성적 산물이 되어야 한다. 도식주의와 유사성에 빠진 원인 분석을 작가들이 자율적으로 찾아야 한다. 따라서 현재의 북한 미술계의 변화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하루 빨리 통일 미술전에서 남 북 작가의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 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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